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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23 - 갑을그룹 창업주 박재갑, 박재을 형제

대구 포목상 “대한민국 섬유를 주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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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N뉴스
기사입력 2020-10-19

대한민국 경제성장 뿌리

섬유패션산업 큰 별을 찾아서

 

갑을그룹 창업주 

박재갑(朴在甲) 1923~1982

박재을(朴在乙) 1931~1991 

 

▲ 갑을그룹 창업주 박재갑, 박재을 형제  © TIN뉴스

KBI그룹 전신인 갑을그룹의 창업주 박재갑, 박재을 형제는 1956년 포목점을 ‘신한견직합명회사’로 키워 본격적으로 섬유 제조 사업에 뛰어든 후 1982년 ㈜갑을을 설립하여 방적, 염료뿐만 아니라 건설과 무역 등으로 그룹을 형성하여 금탑산업 훈장, 1억불 수출탑까지 수상한 국내를 대표하는 성공한 형제 기업인이다. 

 

형인 박재갑은 1923년 4월 당시 경북 영일군 포항면에서 어물도매업을 하던 박춘환씨의 3남 2녀 중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먼저 태어난 형이 있었으나 재갑이 9세 되던 해 사망하면서 실질적인 장남이 됐다. 동생인 재을은 재갑이 태어난지 8년 뒤에 태어났다. 

 

아버지를 따라 만주벌에서 10대의 소년기를 보낸 재갑은 17세에 만주평야의 많은 쌀과 밀에 비해 정미소가 없는 것을 알고 정미소를 세웠는데 이때 큰돈을 벌게 된다. 

 

당시 동생이 학교 갈 나이가 됐는데 제대로 교육을 못 받은 자신과 달리 동생만은 정규교육을 시켜야겠다고 결심하고 하숙방을 얻어주는 등 동생의 공부를 전적으로 책임지고 뒷바라지했다.

 

훗날 갑을이 대기업으로 성장한 뒤 의견이 갈리는 일이 있어도 항상 재을은 형의 의견을 존중하고 따랐는데 그 이유에는 재갑, 재을의 형제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갑을의 성장에 실질적으로 가장 큰 원동력이 된다.

 

한편, 전쟁이 끝나면서 일본군 군량미를 도정하던 일을 빌미 삼아 중국인들이 적의를 보이기 시작하자 재갑은 모든 재산을 만주에 남겨둔 채 10여 년 만에 무일푼으로 귀향해야 했다. 귀국 후 경남 마산에 정착해 부둣가에서 짐꾼 노릇을 했는데 이때 재을도 자전거 수리공으로 일하며 가계에 보탬을 준다.

 

재갑이 만주에서 정미소를 하며 큰 재산을 모았던 때를 그리워하며 독립의 꿈을 키우던 중 6·25가 터지게 된다. 재갑은 국군방위군에 소집돼 최전선에 배치됐고 재을은 통역장교로 들어갔다.

 

아들 모두 징집되자 이때 부친도 마산에서 대구로 거처를 옮겼는데 5개월 만에 제대한 재갑도 같이 대구로 올라오면서 원하던 사업가의 길을 걷게 된다.

 

1951년 당시 둘째누나가 대구 서문시장에 한 평짜리 점포를 갖고 있었는데 이것을 절반으로 나눠 재갑에게 빌려줬고 막노동과 점원생활을 거친 끝에 포목상을 열게 되면서 당시 20살을 갓 넘은 동생인 재을도 형과 함께 이때부터 섬유와 인연을 맺게 된다. 

 

당시에는 한국전쟁이 끝나갈 무렵이라 전국의 포목상들이 대거 모여 있던 대구 서문시장의 상인들은 군납 특수와 민간 수요 급증으로 호황기를 맞았다. 

 

포목상에서 벌어들인 자금으로 1956년 7월 갑을그룹의 모태 기업인 신한견직합명회사를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제조업에 뛰어든다.

 

신한견직합명회사는 대구시 서구 원대동의 2,500평의 부지에 직기 24대로 출발했다. 당시 대구 서문시장 상인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던 “도요타 직기 5대만 있으면 큰돈을 만질 수 있다”는 말을 보기 좋게 실천에 옮겨서 증명했다. 이후 1965년 무역회사인 동국실업을 인수하고 별도로 신한견직주식회사를 설립하여 계속해서 사세를 확장해 나갔다. 

 

자수직물 생산의 동양섬유를 설립했는데 당시 월남전이 한창일 무렵 미군들이 원래 사용하던 캔 계급장 대신 수놓은 계급장으로 바꾸어 달기 시작하면서 이때 수놓은 계급장을 미군에 납품하면서 재미를 보게 된다.

 

한편, 마케팅 차원에서 청와대에 자신이 생산한 견직물을 선물했는데 196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이 대구를 방문했을 때 “도대체 박재갑이 누구냐?”며 물으면서 일약 무명 기업인에서 유명세를 타게 된 일화는 아직도 하나의 에피소드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1974년 포목상 출신의 사이좋은 형제 재갑과 재을은 자신들의 이름을 한자씩 넣어 대구에 직물제조 및 염색가공과 도매업을 영위하는 ‘갑을견직’을 설립한다. 이후 갑을견직은 1982년 3월, 주수출창구인 ㈜갑을에 합병되어 ㈜갑을이란 이름으로 갑을그룹의 주력 기업으로 부상한다. 

 

1976년 4월 면방직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갑을그룹의 또 다른 주력 기업인 ‘갑을방적’이 출범한다. 이후에도 염료제조업체인 동국화공과 기계업체인 동아공업 그리고 국내건설 전문업체인 갑을건설을 설립한다. 

 

 박재을 갑을상사그룹 회장 © TIN뉴스

  

갑을그룹이 그룹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시점인 1970년대 중반부터 섬유수출이 호황을 누리면서 사세도 크게 확장하게 된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 당시 갑을방적은 경방, 전방, 대한방직, 대농, 일신방직, 풍한방직, 충남방직, 삼화방직, 한일방직, 합동방직과 같은 메이저급에는 속하지 못했다. 

 

그래서 1978년 11월 갑을그룹은 주력 기업인 갑을방적의 자본금 규모를 1억 원에서 20억 원으로, 갑을견직은 5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신한견직은 1억 원에서 5억 원으로 늘리고 대대적인 시설투자를 단행한다. 

 

면정방기 수 기준으로 5만추에서 10만 추로 증설하며 메이저급 방직회사들과 경쟁에 나섰으며, 면방업계의 후발주자였지만 1970년대 중반의 수출 호황기를 맞아 과감한 시설투자로 기회를 잡으며 호황기를 누리게 된다. 

 

㈜갑을은 1980년 12월 ‘제17회 수출의 날’에 단일품종으로 나일론 제품과 신발류 수출고를 크게 올리며 수출 1억 달러 달성과 수상업체 가운데서 최고의 상인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앞서 1978년과 1979년에는 각각 석탑산업훈장과 철탑산업훈장을 받은 바 있다. 

 

 1973년 11월 30일 제10회 수출의날(무역의날)에서 박재을 동국실업 대표이사가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산업포장을 수상하고 있다. © TIN뉴스

 

1982년 갑을그룹의 계열회사는 신한견직합명회사를 비롯하여 신한견직주식회사, 동국실업, ㈜갑을, 갑을방직, 동국화공, 동아공업, 갑을건설, 동양섬유, 신한물상 등 모두 11개로 늘어나 있었다. 

 

1982년 12월에 창업자 가운데 한 사람인 박재갑 회장이 사망함에 따라 동생인 박재을 사장과 장남인 박창호 전무가 공동으로 경영하다가 1988년 4월 주총에서 분가를 결정하게 된다. 

 

이후 준비 작업을 거쳐서 동생인 박재을 회장이 동국실업과 갑을건설 등 9개사를 맡아서 갑을상사그룹으로 분가하고, 장남인 박창호 사장이 ㈜갑을과 갑을방적 등 6개사를 맡아서 갑을그룹의 분가를 이루어지게 된다. 

 

이후 박창호 회장의 ㈜갑을은 면방경기 침체에다 임금인상 압력 등으로 과감하게 ‘탈 섬유’를 선언하고 전자, 통신에서 호텔, 레저산업 등으로 숨 가쁘게 확장해나갔다. 하지만 해외에 대규모 공장을 건설할 무렵 IMF 외환위기로 워크아웃 됐다가 2002년 자본잠식에 이어, 2003년 증권거래소 퇴출과 회사 정리절차를 밟아 해체됐다.

 

박재을 회장의 갑을상사그룹은 1991년 故 박재을 회장이 타계한 이후 25년간 갑을상사그룹을 이끈 박유상 부회장(장남)이 고문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2015년부터 박효상 부회장(차남)이 그룹 전체 경영을 맡고 있다.

 

2019년부터 ‘KBI그룹’으로 새롭게 사명을 바꾸고 공격적인 해외 시장 진출과 대내외적 혁신에 나서고 있다. 특히 다수의 중소형 M&A 거래를 통해 △자동차 부품과 △환경/에너지 △섬유 △소재/산업재 △건설/부동산 △의료 부문 등 총 6개 사업 포트폴리오를 균형 있게 성장시키며 탄탄한 사업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실제 2005년 5000억 원 수준에 불과했던 그룹 매출은 M&A 효과 덕분에 5년만인 2010년 1조5000억 원을 기록했고 이후 사업 포트폴리오가 자리를 잡으면서 2018년에는 매출 2조원을 기록했다. 

 

올해를 그룹 재건의 원년으로 삼고 세계 10개국에 진출한 계열사와 사무소를 기반으로 한 해외시장 공략으로 매출 3조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상현 기자 tinnews@t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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