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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13 - 삼양그룹 김연수(金秊洙)

근대기업 이정표 세운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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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N뉴스
기사입력 2020-04-06

대한민국 경제성장 뿌리

섬유패션산업 큰 별을 찾아서

 

삼양그룹 창업주

수당(秀堂) 김연수(金秊洙)

1896~1979

 

▲ 삼양그룹 김연수(金秊洙)   

수당은 1896년 전북 고창에서 16세기 조선 성리학의 개화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한 하서 김인후의 13대손으로 태어났다.


친형인 인촌 김성수가 아들이 없던 백부 원파 김기중의 양자로 들어가며 수당이 사실상 장남 역할을 했다.


와세다 대학교에 유학 간 김성수는 수당을 일본으로 데려왔는데, 항구에서 철도를 타고 도쿄로 가면서 보았던 공업단지의 모습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1921년 일본 경도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수당은 이듬해 김성수가 경영하던 경성직뉴와 경성방직에서 근무를 시작한 뒤 경영까지 맡는다.


이듬해인 1924년 집안 소유의 여러 농장을 관리하기 위해 삼수사(三水社, 삼양사의 전신)를 세우고 1931년까지 장성농장, 줄포농장, 고창농장, 명고농장, 신태인농장, 법성농장, 영광농장 등 모두 7개 농장을 창설했다.

 

 삼양그룹 창업주 수당(秀堂) 김연수(金秊洙) 1920년 당시 모습 © TIN뉴스


1931년 삼수사를 드나들던 문관산의 제안으로 이름을 삼양사로 개칭한다. 1934년 삼양사를 합자회사로 변경하고 사장에 취임했다.


1925년 경부터 학교 경영 및 언론사 운영 등으로 사회 활동에 나선 김성수를 대신하여 경성직뉴와 경성방직을 경영하다 1935년 경성방직 제2대 사장으로 취임했다.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1934년부터 경성방직 사업을 더 확장하여 방적공장을 건설하고, 1936년 8월부터 제품을 생산했다.

 

▲ 국내 첫 해외 진출 삼양사 만주 봉천 사무소(1936)  © TIN뉴스


또한 일제 강점기의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만주에 진출, 1939년 ‘남만 방적’을 설립하여 한국기업 해외 진출사의 첫 장을 기록하기도 했다.


해방 이후 경성방직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그의 매제 김용완이 경성방직(경방으로 개명)을 이어받았다.


수당은 실업가이었지만 김성수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인재 육성사업과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에도 적극적으로 앞장섰다.


현재 물가로 치면 약 1,000~1,500억원 규모의 고려대학교 설립 기금을 기부하는가 하면, 1939년 34만원을 출연하여 한국 최초의 민간 장학재단인 양영재단을 만들었다.

 

또 1968년 삼양사 주식을 상장하며 설립한 수당(秀堂)재단을 통해 지금까지 2만1000여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제공했고, 420여명의 대학교수에게 연구비를 지원했다.


1961년 한국경제협의회(현 전국경제인연합회) 초대회장에 선임되었으며, 1963년에는 전주방직을 인수하여 삼양모방주식회사를 설립했다.

 

▲ 1969년 전주 화섬공장 준공식에서 테이프를 자르고 있는 수당 김연수 회장  © TIN뉴스


1969년에는 화학섬유산업에 참여하여 전주에 폴리에스테르 화학섬유 공장을 세워 우리 국민의 의식주 해결에도 크게 기여했다.


1975년 삼양사 명예회장으로 경제활동을 해오던 수당은 1979년 84세로 영면했다.


수당은 19세기 말에 태어나 일제 강점기, 6.25전쟁, 4.19와 5.16, 경제 근대화의 시대에 살아오면서 정치·사회적 격동의 한가운데서 우리나라 경제근대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겼다.


또 ‘인간존중의 원칙’을 소중히 여기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일관된 실천을 통해 많은 교훈을 남겼다.


한국 근대 기업사의 큰 이정표를 세운 수당의 이러한 업적들은 정부로부터 인정받아 1971년 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으며, 1979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

 

한편, 수당은 민족자본을 형성했다는 견해에도 일본 제국주의 침략 정책에 협력한 행위로 인해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작성한 친일명단에 포함됐다.


해방 이후 수당은 “설사 내가 지녔던 일제치하의 모든 공직이나 명예직이 스스로 원했던 것이 아니고 위협과 강제에 의한 것이었다고 할지라도 일단 그런 직함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국과 민족 앞에 송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자신의 죄과를 순순히 시인하고 속죄했다.


김상현 기자 tinnews@t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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