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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그룹 설립자 만우(晩愚) 조홍제(趙洪濟)

공업 불모지에 산업 일으켜 한국경제 발전 초석 다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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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N뉴스
기사입력 2019-11-11

대한민국 경제성장 뿌리

섬유패션산업 큰 별을 찾아서

 

효성그룹 설립자

만우(晩愚) 조홍제(趙洪濟)
(1906~1984)

 

▲ 효성그룹 설립자 만우(晩愚) 조홍제(趙洪濟)    ©TIN뉴스

효성그룹을 설립한 조홍제(趙洪濟)는 1981년 포춘지 세계 500대 기업에 삼성과 효성의 이름을 올려놓은 유일한 기업가로 한국기업사에 빛나는 성공신화를 남긴 인물이다.


조홍제(趙洪濟)는 1906년 5월 20일 경남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 신창부락에서 출생했다. 부친은 조용돈(趙鏞惇)이며 모친은 안부봉(安夫奉)으로 맏아들이다.


그의 아버지는 한학에 조예가 깊은 선비였으며 부농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다. 조부의 훈도로 소년 시절을 보냈고, 17세까지 5년 동안 종조부인 서천(西川)선생을 스승으로 섬겼다.


중동학교(中東學校) 초등과와 협성실업학교(協成實業學校)를 각각 수료하고, 19세 때 중앙고등보통학교(中央高等普通學校)에 입학하였으나 1926년 4학년 2학기 때 6·10만세운동 주모자의 한 사람으로 기소되어 옥고를 치렀다.


그 뒤, 일본에 건너가서 1929년 호세이 대학 경제학부에 입학한 뒤, 1935년에 졸업하여 귀국했다.
1942년에 군북산업조합을 인수하여 군북산업주식회사(郡北産業株式會社)를 설립하여 정미업을 운영하였다.

 

1947년에는 군북산업주식회사 사장직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상경하여, 1948년 이병철(李秉喆)과 공동출자로 삼성물산공사(三星物産公司)를 설립하여 부사장으로 취임하였다. 이후 삼성물산 부사장, 제일모직 부사장, 제일제당 사장을 역임하면서 삼성그룹에 종사하였다.


1962년 9월, 15년간에 걸친 이병철 회장과의 동업 관계를 청산하고, 효성물산주식회사로 독자사업을 시작했다. 효성물산주식회사는 1957년 삼성물산이 정부보유 달러의 공매에 복수로 참여하기 위하여 만든 무역회사이다.

 

 효성물산주식회사는 한국타이어와 대전피혁을 인수하는 등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하였다.  © TIN뉴스


효성물산주식회사는 조선제분(朝鮮製粉)을 인수하여 성공하였으나, 1966년에는 제분업에서 손을 떼고 나일론 원사를 생산하는 동양나이론을 설립했으며, 한국타이어와 대전피혁(大田皮革)을 인수하는 등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하였다.


1970년 한일(韓一)나이론을 인수하여 동양나이론에 흡수 합병을 가하였다. 1973년에는 동양폴리에스터와 동양염공(東洋染工)을 설립하는 한편 피혁원단 및 제품생산을 위하여 동성(東星)과 대성(大星)을 각각 설립하였다.


1975년에는 한영(韓永)공업을 인수하여 효성중공업으로 개편했으며, 1976년 효성물산주식회사는 종합무역상사로 지정받았다. 1977년에는 원미섬유(元美纖維), 1978년에는 대성목재(大成木材)를 인수하였다. 1979년에는 효성금속, 효성기계, 효성알미늄(울산알미늄) 등으로 사업의 영역을 넓혀갔다. 이후 1970년대 중반부터 효성 그룹은 국내 5대 그룹 10대 재벌로 부상하였다.


이밖에 1959년에 배명학원 이사장, 1976년에는 동양학원 이사장,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부회장 등을 역임하는 등 교육과 사회 활동에도 참여했다. 1971년, 고려대학교에서 기업 발전과 국민 경제의 성장에 기여한 공로로 최우수 경영자상, 1975년 11월 제12회 수출의 날에 수출 유공자가 되어 동탑 산업 훈장, 1976년 11월 제13회 수출의 날에 금탑 산업 훈장을 수상했다. 1984년 1월 16일 78세로 별세했다.

 

 효성그룹 설립자 조홍제(趙洪濟) 회장은 인화(人和)를 경영이념으로 삼았다. © TIN뉴스


인화(人和)를 경영이념으로 삼은 조홍제 회장이 1978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세 아들에게 각각 다른 휘호를 남긴 일화가 있다.


장남인 조석래 효성 회장에게는 덕을 숭상하며 사업을 넓히라는 뜻으로 ‘숭덕광업(崇德廣業)’을 줬다. 차남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에게는 쉬지 말고 힘을 기르라는 뜻인 ‘자강불식(自强不息)’을, 3남 조욱래 효성기계 회장에게는 항상 재난에 대비하라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휘호를 남겼다.


‘늦되고 어리석다’라는 의미의 ‘만우(晩愚)’라는 호와 달리 그는 늦었지만 결코 어리석지 않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커다란 업적을 남기고 간 기업인이다.

김상현 기자 tinnews@t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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